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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유치원 셋, 초등학교 열, 중고등학교 열 여섯, 대학교 셋, 그리고 점점 더 늘어만 가는 학교들.
비상식적일 만큼 학교만 빼곡히 들어찬 이곳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두가 지루하다고 느낄만큼의 평범함을 동경하고 바라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일본에서 시작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초능력 실험이 호기롭게 진행되자,
세계 각국에서는 연구자료를 수령해 독자적으로 초능력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 역시 인천첨단공업단지를 중심으로 초능력 연구 기관을 설립했다.

 

그리고 당신은 인천첨단공업단지에 들어온 수많은 사람 중 한 명 이다.각자의 사연이야 아무렴 어떠하랴.
초능력을 동경해서 부모의 반대를 꺾고 자원 입학한 학생들도 있고,
정부가 제시하는 장학금 및 취업혜택을 노리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어떤 인생을 보냈던, 보내고 싶던 간에 우리들은 여기서 모두 똑같다.
초능력자가 된다는 막연한 기대와 다가올 인체실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품고.

 

초능력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고 인천첨단공업단지내의 생활은 밖에서 선전한 것과는 달리 지저분한 비즈니스였다.

머리를 갈라 전극을 꽂고 전기 충격을 가했고, 몸이 아닌 정신이 먼저 무너지는 이들도 있었으며 하루종일을 암실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거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그래도 우리는 버텼다. 초능력자가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버티고 또 버텼다. 고문에 가까운     커리큘럼을 견디고 견뎌 우리는 하나 둘 초능력자로 개화했다.

처음 여기에 들어온 우리는 전부 똑같았을 터인데,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급을 매기고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예쁜 이름표를 달았다.

레벨 0은 능력은 있지만 아직 발현이 되지 않은 상태.
레벨 1은 미약한 능력이 발현 된 정도.
레벨 2는 인첨공 안에서 평균적인 수준. 일상에서 본격적으로 도움이 된다.
레벨 3은 무기에 비유하자면 권총.
레벨 4는 성적에 비교하자면 전교권으로 꼽히는 수준의 재능있는 아이들.
레벨 5는 인첨공 250000명의 학생 중에서 극소수로만 존재하는, '천재'들.


그렇게 어른들이 만든 등급표에 맞춰 우리들은 나란히 정렬되어 줄세워졌다.
우수한 사람이 생기면 낙오자도 생긴다. 구분을 짓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무서운 것은 우리 학생들조차 어느샌가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레벨 0-2는 열등생, 레벨 3-5는 엘리트. 우리들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예쁜 이름표를 달았다.

 

당연하게도 열등생들은 무력감과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곪고만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트라고 불리는 우등생들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동정도 연민도 없었다.

인첨공 뒷편에는 더욱 더 지저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의 연구실적을 빼내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하얀 가운을 입은 어른들이 있었고,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

 

어른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고 그 이해관계 때문에 저지먼트나 안티스킬이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블랙옵스. 흑색작전. 전부 우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초능력을 동경해서 인첨공에 들어왔을터인데, 우리는 빛을 동경하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샌가 우리는 어둠속에서 일하게 되었다.

 

각자의 사연이 다른들 어떠하랴.

누군가는 대처할 수 없는 약점을 잡혀버렸고 누군가는 거절할 수 없는 거래조건에 이끌려왔다. 또 개중에는 스스로 원해서 블랙옵스에 자진해서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빛을 섬기기 위해 어둠속에서 일하고, 그들이 더러워져야 세계가 깨끗해지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

뭐,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들 예상했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들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있고,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날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어줬다는 건 너도 블랙옵스라는 이야기겠지?

 

자, 이제 일할 시간이네.

언젠간 우리도 자유로워지고 원하는 바를 챙겨서 나갈 수 있을거야.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인첨공의 치안과 평화를 지켜보자!

​우리는 어둠속에서 빛을 섬긴다. 우리가 더러워져야 세상이 깨끗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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